마의태자 발자취

신라마의태자릉과 용마석

비로봉 아래에는 마의태자의 무덤이라 전하는 '신라마의태자릉(新羅麻衣太子陵)'이라는 비석이 새겨진 무덤이 있고, 바로 옆에 그가 타고 다니던 용마(龍馬)가 변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용마석(龍馬石)도 있다. 무덤은 둘레 약 10미터, 높이 1.5미터로 보통 무덤보다 조금 크다.

옥새바위

마의태자가 옥새를 숨겼다고 전해지는 바위로, 옥새바위의 주위에는 옥새를 수호하기 위해 늘 오색영롱한 뱀들이 돌아다녔다고 한다.

김부리 대왕각

김부리라는 지명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신라 경순왕(김부대왕)이 살았던 데서 유래한다고 소개되어 있지만 김부리의 대왕각(大王閣)에는 경순왕의 태자라는 김일(金鎰) 이라는 인물이 신으로 모셔지고 있으며 대왕각 안의 위패에는 「신라경순대왕태자김공일지신위(新羅敬順大王太子金公鎰之神位)」라고 새겨져 있다( '김일'이라는 인명 자체는 1940년대 이후에야 새로 위패에 추가되었다).

수거너머

김부리 어귀에 있는 고개로 마의태자가 수레를 타고 넘었다고 전해진다.

맹개골

마의태자가 이끌던 군사 중 한 사람이었던 맹장군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라고 전해진다.

군량리

신라 부흥운동을 위해 군량미를 모아 저장하였다는 데에서 유래한 마을 지명이다.

다물

고구려 말로 '국권 회복'을 뜻하는 것으로(인제는 고구려땅이었다) 이를 근거로 마의태자가 신라부흥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는 설이 있다.

갑둔리 5층 석탑

2중 기단 위에 5층으로 쌓은 석탑으로, 고려 초기 석탑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면석에 명문이 있고 석등도 함께 있었으나 원인 모르게 파손 패몰되었던 것이 발견되고 연구고증되어 복원한 탑이다.

갑둔리 3층 석탑

갑둔리 3층 석탑은 원래 자리에 일부 남아있던 기단과 갑둔초등학교에서 보간하던 탑신부를 새로이 복원해 놓은 것으로, 지붕돌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추정된다.

한계사지

한계사지는 석탑과 석등 대좌, 쌍사자 유구 등 많은 유산들이 흩어져 있는 곳으로 전각터 가운데는 석조불상의 기단이 남아있고, 그 뒤로는 석불대좌와 광배가 남아있다.

한계산성

한계령은 설악산과 점봉 사이에 위치한 첩첩산중으로, 마의태자가 고려에 항거하기 위해 자신을 따라온 백성들과 쌓았다는 한계산성이 있다. 성안에는 마의태자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대궐터가 남아있다.

진부령

진부령은 본래 김부령에서 불리우던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